
700편 출연, 수상 경력, 제작·행정 활동까지 한국 영화계에 남긴 발자취를 정리했습니다. (사진 출처 - 김지미 나무위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해 온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김지미 배우가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며 “이장호 감독이 알려왔다”고 밝혔습니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데뷔해 1990년대까지 약 700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기며 한국 영화사의 중심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토지’(1974·김수용), ‘길소뜸’(1985·임권택) 등 거장들과의 협업을 통해 폭넓은 연기 세계를 보여줬으며,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영예를 안았습니다.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 헌액 당시 붙은 ‘화려한 여배우’라는 수식어는 고인의 존재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김지미는 덕성여고 재학 중 우연한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배우의 길에 들어섰고, 데뷔 이듬해 ‘별아 내 가슴에’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후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장희빈’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습니다.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사랑받았으며, ‘불나비’(1965·조해원)에서는 팜므파탈 매력의 정점을 보여주며 연기 변신에도 성공했습니다.
사생활 또한 대중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18세 나이에 감독 홍성기와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이후 최무룡과의 결혼과 별거·이혼은 큰 화제가 됐습니다.
당시 최무룡이 남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발언은 지금까지도 회자됩니다.
이어 가수 나훈아와의 결혼 발표와 6년 만의 사실혼 정리, 1991년 심장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의 결혼과 2002년 이혼까지 이어지며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연기자로서의 폭도 대단했습니다.
‘토지’에서 대지주 가문의 안주인 역으로 파나마국제영화제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육체의 약속’에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내공을 입증했습니다.
‘길소뜸’에서는 이산가족을 찾는 중년 여성을 혼신의 힘으로 연기해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대표작을 완성했습니다.
김수용 감독은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토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던 걸 보면 연기는 그의 큰 특기였던 듯하다”며 전했습니다.
이어 “‘진짜 배우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였다”고 고인을 회고했습니다.
제작자로서의 행보도 활발했습니다.
1985년 ‘지미필름’을 설립해 임권택 감독의 ‘티켓’(1986) 등 7편을 제작했으며,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
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영화 행정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영화계 여장부’로 불렸던 고인은 강단 있는 태도로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고인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 “배우로서, 인생으로서 종착역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이 돼 간다”며 “저에게 사랑을 주신 여러분 가슴 속에 영원히 저를 간직해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하며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영화인장 준비에 들어갔으며, 한국 영화계는 또 한 명의 거목을 떠나보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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