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핵심 요약
영화 '칼리굴라'를 연출한 이탈리아 거장 틴토 브라스 감독이 로마에서 향년 93세로 타계했다.
- 이탈리아 에로티시즘 거장 틴토 브라스 감독이 로마 자택에서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살롱 키티'와 '칼리굴라', '열쇠' 등을 연출하며 세계 영화계에 굵직한 족적과 논쟁을 남겼다.
- 지난 9월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에서 공로상인 피에트로 비앙키상을 수상한 뒤 영면에 들었다.
이탈리아 에로티시즘 영화를 대표해 온 영화감독 틴토 브라스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고인은 향년 93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로마 자택서 향년 93세로 타계
틴토 브라스 감독은 4일(현지 시각) 오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노환에 따른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 등 현지 언론은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영화계 거장의 타계를 공식화했다. 장례 절차는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끼리 비공개로 치러진다.
아방가르드 실험에서 출발한 영화 인생
1933년에 태어난 틴토 브라스 감독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진로를 전환해 영화계에 입문했다. 프랑스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일하며 누벨바그 사조를 직접 접했고,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현장 경험을 쌓았다.
고인은 1963년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상영된 데뷔작 '일하는 자는 패배한다'를 통해 신진 아방가르드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양키'(1966)와 '콜 쿠오레 인 골라'(1967) 같은 실험적인 작품을 잇달아 연출하며 현대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살롱 키티'와 '칼리굴라'로 이어진 세계적 논쟁
틴토 브라스 감독은 1970년대에 들어서며 에로티시즘을 작품 세계의 중심 화두로 끌어올렸다. 나치 시대 독일 베를린의 매춘업소를 배경으로 다룬 1976년 작 '살롱 키티'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어 로마제국 황제의 이야기를 그린 대작 '칼리굴라'(1980)를 선보였다.
말콤 맥다월과 헬렌 미렌이 주연을 맡고 고어 비달이 각본을 쓴 '칼리굴라'는 당시 약 2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제작자 밥 구치오네가 감독과 상의 없이 하드코어한 장면을 무단 삽입하면서 갈등이 불거졌고, 브라스 감독은 대중에 공개된 최종본을 자신의 연출작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논란의 장면들을 걷어낸 복원판은 오랜 세월이 흐른 2023년 칸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1980~1990년대 전성기와 대표 필모그래피
1983년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한 영화 '열쇠'를 연출한 고인은 에로티시즘 장르의 대가로 평가받았다. 이후 '미란다'(1985), '파프리카'(1991), '올 레이디 두 잇'(1992)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다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활동 기간 내내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을 적지 않게 받았다.
베네치아영화제 피에트로 비앙키상과 마지막 메시지
2010년 뇌출혈로 쓰러진 틴토 브라스 감독은 투병 생활 속에서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고인은 지난 9월 열린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개막 전야 행사에서 초기 대표작 '콜 쿠오레 인 골라'의 4K 복원판 재상영과 함께 영화계 공로를 기리는 피에트로 비앙키상을 받았다.
행사 당일 아내 카테리나 바르지가 대독한 메시지에서 고인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 "기괴하고 역설적이며 거칠고 과장되고 초현실적"이라 정의했다. 평생에 걸쳐 기존 금기에 맞서며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던 영화인은 그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자주 묻는 질문
틴토 브라스 감독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고인은 4일 오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노환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별세했습니다.
영화 '칼리굴라' 개봉 당시 어떤 갈등이 있었나요?
제작자가 감독과 상의 없이 하드코어 장면을 무단 삽입해 브라스 감독은 극장 개봉판을 공식 연출작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수상한 영화제 상은 무엇인가요?
지난 9월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개막 전야 행사에서 공로를 기리는 피에트로 비앙키상을 수상했습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해주세요.